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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담은 신학과의 대화/새롭게 바라보는 신학적 관점

성령의 은사에 대한 또다른 이해

by 늘 즐거운 대학로 로이드 2007. 1. 16.

                                                                                 http://blog.naver.com/salang27   

 

성령의 은사를 받고자 사람들이 
심령 부흥회나 성령세미나에 참석하는 것을 많이 봅니다.

 

참석한 사람은  언어를 말하고 
집회 인도자가 안수하면 뒤로 넘어지기도 합니다.

이상한 언어를 말하고 넘어진 사람은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고 기뻐하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은 성령의 은사를 받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고
어떤 이들은 속상하며 평생의 소원이라며 방언 말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방언을 말하고 예언을 하고 진동하고 넘어지는 것이
어째서 성령의 은사라고 우리는 생각하는 것일까요?

왜 성령님이 하필이면

사람들이 방언을 말하고
예언을 하고 색다른 행동을 하게 함으로써
당신에게 역사 하신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방언을 말하고 뒤로 넘어지는 기쁨의 순간이
그 후 그들의 삶에 미친 영향은 무엇입니까?

방언을 말하고 넘어진 이후 그들은
일상에서 변화된 삶을 살고 있는가?

 

영으로 가득 찬 삶을 살고 있는가?

여전히 전과 똑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크리스찬들이여,

너무 성령의 가시적인 현상에 연연하지 마십시요.

일시적인 현상에 흥분하지 마십시요.

성령은

당신에게 일시적인 흥분을 선사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성령은 일회용이 아닙니다.

 

성령은 이상한 존재가 아닙니다.

이상한 언어를 말하고 넘어지는 것은 성령과 무관하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 현상은

성령 세미나 밖에서도 그리스도교 밖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 현상에 함부로 성령의 이름을 갖다 대지 마십시요.

참으로 영의 인간이라면 
방언을 말하지 않고 진동을 하거나 예언을 하거나 넘어지지 않더라도
이상한 행동을 하지 않더라도
모든 이에게서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는 사람입니다.

기도할 때 어떤 이상한 일이 자기에게 일어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모든 이를 신뢰하고 모든 이에게 사랑을 주고 희망을 주는 사람이다.

 

성령은 조용히 우리에게 내려오십니다.

성령의 인간은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고 나오는 저 예수처럼 조용합니다.

 

나는 방언을 합니다.

그것도 항상 성령의 강한 역사로 주님을 향한 메시지를 보냅니다.

 

방언보다 더 좋은 은사와 은혜로

당신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사탕 한알에

고독과 위안을 오가는  삶의 앒은 모습들에서

어린아이의 신앙의 진정한 군상들을 바라봅니다.